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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이 넓어질수록, 압도될 때가 자주 생긴다.

 

 

뭐든지 첫 번째 단계는 안목이 먼저 넓어지는 것이다.

 

어떤 게 좋은 것인지 알게 되는 게 첫 번째 단계의 끝.

 

개발에 대입해 보자면, 

전체적인 흐름과 코드 쓰임새의 이유를 이해하게 되어서

어떤 코드가 좋고 어떤 코드가 나쁜 것인지 알게 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의 끝이 되겠다.

 

 

뭐든지 아직 제대로된 결과물을 내지 않아도 되는 초심자 부분이 가장 재미있다.

이때는 뭐든지 닥치는대로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이 책 저 책을 오가며 잡식성으로 읽어댔고 마구 웹서핑을 해댔다.

그렇게 개발이라는 분야의 넓은 풀에서 마음대로 헤엄을 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씩 안목이 넓어지면,

이곳이 풀이 아니라 바다라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나에게 수영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몸이 경직되며 바다에 빠져버릴까 봐 겁을 먹게 된다.

 

 

사실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같은 곳에 있고,

아직 헤엄을 제대로 칠 줄 모른다는 사실은

이곳이 풀이든지 바다든지 간에 변함없다. 당분간은.

 

 

그래도 가끔씩 찾아오는

평생 공부해도 익숙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압도감은

평생 초심자로 살아야할 것만 같은 이 두려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이런 두려움을 느낀 건 개발 분야에서만이 아니다.

이때까지 했던 대부분의 일들에서 한 번씩 느껴보았다.

여러 해결 방법도 찾아보았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문구를 소개하고 싶다.

 

 

"당연히 모두가 처음하는 것은 두렵다.

두려워도 그냥 하는 사람이 있고,

두려워서 그만 두는 사람이 있는 것뿐이다."

 

 

사실 고등학생 때 우리 학교에 농구가 유행했었다.

농구를 해본 적 없던 친구들이 점심시간에 모여서 농구를 했다.

나에게도 같이 할 것을 권유했으나,

운동 신경에 자신이 없던 나는

'내가 끼면 경기가 더 더뎌지기만 할 거야. 친구들이 지루해하고 답답해할지도 몰라.'

지레 겁을 먹고 농구에 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은 점점 더 농구를 잘하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농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고3이 되었을 때, 나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친구들과 농구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정말로 농구 경기에 낄 수 없어져 있었다.

드리블도 못 하는데 어떻게 같이 농구를 하겠는가.

나는 농구가 내 삶에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기서 끝나면 지금 깨달은 만큼을 습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농구의 지옥은 대학생 때까지 찾아왔다. 

대학교에 오자 친한 친구들은 농구를 좋아했다.

사실 나도 몸을 쓰고 싶었고 뭐라도 공놀이를 하고 싶었었나 보다.

친구들이 농구를 하니까 나도 같이 하고 싶고 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똑같은 후회를 한다.

'고3 때 좀 늦었더라도 그냥 도와달라고 하고 농구 같이 할걸!

고3 때 친구들은 이해해 주고 도와주어서, 조금이라도 농구를 할 줄 알게 되었을 텐데.

그러면 경기는 될 정도 실력으로 대학교에서 스스로 실력을 높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또다시 농구를 하지 못했다.

 

 

여기서 끝일 것 같은가?

사실 이 굴레는 영원히 지속된다. 

직장인이 되고는 없을 것 같은가?

농구가 아니라 다른 것은?

 

 

나는 두려워도 그냥 하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가끔씩 너무 방대한 개발 분야의 스케일이 두렵다.

하지만 두려워도 나는 그냥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고 봤을 때 

무서워도 계속했어야 

나중에도 즐길 수 있으니까!

 

난 농구를 잃었고

개발은 잃지 않을 것이다.